남편의 고무장갑
어느 한가한 주말이었습니다.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대형할인점에
장을 보러 갈 때면 나는 으레 한 가지 물건에
시선이 머뭅니다.
그건 값 비싼 가전제품도, 자동차 용품도 아닌
빨간 고무장갑 입니다.
"여보 이것 좀 봐!......."
"또 고무장갑? 제발 그만 좀 해요."
아내는 고무장갑만 보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지만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진열대의 고무장갑을
몽땅이라도 사고 싶은 심정을
억누를 길이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 물에 살짝 살얼음이 끼는 초겨울부터
어머니의 손은 검붉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겨울이 깊어갈수록 거북이등처럼
쩍쩍 갈라졌습니다.
그 시절 우리집은 야채 가게를 했는데 겨울장사 중
제일 잘 팔리는 것이 콩나물과 두부였습니다.
콩나물과 두부를 얼지 않게 보관하려면 콩나물은
헌 옷가지를 여러겹 두르면 되지만 두부는 큰 통에
물을 가득 붓고 그 속에 넣어 둬야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윗물은 꽁꽁 얼어도 밑은 얼지 않아서
두부를 오래두고 팔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얼음을 깨고 맨손으로
두부를 건져내야 했습니다.
"으...시리다...시려."
쩍쩍 갈라진 상처사이로 얼음물이 스며 쓰리고 아팠을
때 어머니, 그때 고무장갑 한 켤레만 있었더라면
어머니의 손이 아내처럼 고왔을 텐데...
30년이 지난 지금도 고무장갑만 보면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는 못난 아들은 오늘도 아내 몰래
고무장갑 한 켤레를 쇼핑수레에 담고 말았습니다.
"이이가, 기어이..."
이쯤대면 아내도 더는 말릴 수 없다는 듯이 말합니다.
"당신 이러다 고무장갑 장수 되겠수."
고무장갑은 제게 가난 했던 시절의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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