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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시장♣

아내를 떠나보내며...

아내를
아내를 떠나보내며...

 

 

 

아내를 떠나보내며...  

 

저만치서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방걸레질을 하는 아내...

 

"여보, 점심 먹고 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

 

"나 점심 약속 있어."


 

해외출장 가 있는 친구를 팔아 한가로운 일요일,

 

아내와 집으로부터 탈출하려 집을 나서는데

 

양푼에 비빈 밥을 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아내가 나를 본다.

 

무릎 나온 바지에 한쪽 다리를 식탁위에

 

올려놓은 모양이 영락없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아줌마 품새다.


 

"언제 들어 올 거야?"

 

"나가봐야 알지."


 

시무룩해 있는 아내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을 끌어 모아 술을 마셨다.

 

밤 12시가 될 때까지 그렇게 노는 동안,

 

아내에게 몇 번의 전화가 왔다.

 

받지 않고 버티다가 마침내는 배터리를 빼 버렸다.


 

그리고 새벽 1시쯤 난 조심조심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내가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자나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욕실로 향하는데

 

힘없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갔다 이제 와?"

 

"어. 친구들이랑 술 한잔.... 어디 아파?"

 

"낮에 비빔밥 먹은 게 얹혀 약 좀 사오라고 전화했는데..."

 

"아... 배터리가 떨어졌어. 손 이리 내봐."


 

여러 번 혼자 땄는지 아내의 손끝은 상처투성이였다.


 

"이거 왜 이래? 당신이 손 땄어?"

 

"어. 너무 답답해서..."

 

"이 사람아! 병원을 갔어야지! 왜 이렇게 미련하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느 때 같으면, 마누라한테 미련하냐는 말이 뭐냐며

 

대들만도 한데, 아내는 그럴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

 

난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내를 업고 병원으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내는 응급실 진료비가 아깝다며

 

이제 말짱해졌다고 애써 웃어 보이며

 

검사받으라는 내 권유를 물리치고 병원을 나갔다.

 

 

다음날 출근하는데, 아내가 이번 추석 때

 

친정부터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노발대발 하실 어머니 얘기를 꺼내며 안 된다고 했더니

 

 

"30년 동안, 그만큼 이기적으로 부려먹었으면 됐잖아.

 

그럼 당신은 당신집 가, 나는 우리집 갈 테니깐."


 

큰소리친 대로, 아내는 추석이 되자,

 

짐을 몽땅 싸서 친정으로 가 버렸다.

 

나 혼자 고향집으로 내려가자,

 

어머니는 세상천지에 며느리가 이러는 법은

 

없다고 호통을 치셨다.

 

결혼하고 처음. 아내가 없는 명절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태연하게 책을 보고 있었다.

 

여유롭게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놓고 말이다.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

 

"여보 만약 내가 지금 없어져도,

 

당신도 애들도 어머님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을 거야.

 

나 명절 때 친정에 가 있었던 거 아니야.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사 받았어.

 

당신이 한번 전화만 해봤어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

 

당신이 그렇게 해주길 바랐어."

 


 

아내의 병은 가벼운 위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난 의사의 입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아내가 위암이라고? 전이될 대로 전이가 돼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

 

삼 개월 정도 시간이 있다고...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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