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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시장♣

부정적인 생각이 들때 읽으면 좋은글

부정적인 생각이 들때 읽으면 좋은글

 

        

 

 

자신도 모르게 내뱉는 말이 당신의 미래를 결정한다면? 

 

우리는 무의식 중에 여러가지 말을 하고 삽니다. 그 무의식이 바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이죠.

생각과 마음이 곧 행동이되고 그 행동은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이 인생을 만든다는 말 들어보셨을 겁니다.

내가 무의식중에 가지고 있던 그 마음이 바로 당신의 인생을 결정한다는 사실.

 아래의 글을 한번 읽어봅시다. 하나는 긍정적이고 하나는 부정적이죠? 나는 평소에 아래 두가지 성향의 말 중 어떤 말을 더 자주 하고 있습니까? 

 

 



 

 

 "잘 할수 있어"

"나는 잘 살게 될꺼야"

"그래, 해보자"

 

 

"괴로워"

"언제 끝나게 되는거지?"

"내 삶은 왜 이런거지?"

 

 

살아생전 두 화가들이 자주 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피카소는 부유하고 행복하게 그림을 그리면서 90세까지 살았고
고흐는 37세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과연, 두사람의 삶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요?  

 

■ 우선 파키소와 고흐의 그림부터 살펴볼까요??

                                                       <피카소의 그림>

20세기 조형에 가장 큰 변혁을 일으켰던 입체파의 창시자이며,사실주의에서 초현실주의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양식의 그림을 남겼다. 그의 회화역사는 기법과 주제가 다양하게

변화하였으나 그 주제의 중심은 전쟁과 사랑·빈곤과 절망·노여움과 기쁨·사랑과 성(性) 등이다.

1901~1905년 까지의 청색시대,1905~1906년의 장미빛 시대 등을 거치며 회화뿐 아니라

조각·석판화·도자기·소묘·무대장치·벽화·태피스트리 등도 제작하였으며 미술사상 제작량이

가장 방대한 화가 중의 한 사람이다.

  The Dream(1932) 꿈

피카소는 우연히 금발 머리의 젊고 아름다운 한 처녀, 마리 테레즈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는 그리스 고전 조각에서

볼 수 있는 똑바른 콧날과 푸른 회색 눈을 가진 아주 이상적 미인이었다. 테레즈는 피카소가 다가가서 자신을 소개했을 때,

당시 이미 유명한 화가였던 그를 알지 못할 정도로 미술에는 문외한이었으며 대화가 통하는 상대는 못되었던 듯 하다.

그러나 피카소는 그 아름다움에 반하여 6개월 동안 구애하였으며 결국 자신의 집 근처에 비밀리에 거처를 마련하여

그 후 몇 년간 열정적으로 이 여인을 소재로 한 작품을 그렸다.

 

<반고흐의 그림>

 

 

렘브란트 이후 가장 위대한 네덜란드 화가로 널리 인정받고 있으며, 현대미술사의 표현주의 흐름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불과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제작된 그의 작품들은 강렬한 색채, 거친 붓놀림, 뚜렷한 윤곽을 지닌 형태를 통하여 그를 자살까지

몰고 간 정신병의 고통을 인상깊게 전달하고 있다. 그의 걸작으로는 수많은 자화상과 <별이 빛나는 밤 The Starry Night〉(1889)이 있다. 생애의 마지막 3년 동안 제작한 작품들로 반 고흐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의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그의 그림에서는 모든 것이 살아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작품은 많은 현대회화의 발전, 특히 수틴과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가 평생 동안 그린 800점 이상의 유화와 700점 이상의 데생 가운데, 그가 살아 있는 동안 팔린 작품은 데생 1점뿐이었다.

 

                      <해바라기 >             <별이빛나는밤>              <고흐의방>  

 

 

보신 그림은 두 화가들의 그림으로 세기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카소와 고흐의 그림은 현재 사람들에게 모두 사랑받고 인정받고 있지만

  이들의 삶은 대조적이었습니다.

 

 

                                           ■ 두 화가들의 대조적인 삶

                                       빈센트 반 고흐

 

  " 나의 그림, 그것을 위해서 나는 나의 목숨을 걸었고 이성까지도 반쯤 파묻었다. "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출생 - 사망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 1890년 7월 30일
가족 - 6남매 중 장남
경력

1890.01 브뤼셀 그림 전시
1889     정신병원 입원
1880     브뤼셀 미술학교 입학
1879     바스메스 부목사

시달려야 했다. 고흐의 작품은 살아있을때에는 주목 받지 못하다가 고흐가 세상을 떠난 10년이 지난후에야 그의 작품은 큰 명성을 얻는다. 고흐는 네덜란드 빈민촌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고흐의 우울한 성격의 바탕이 되는 어린시절의 특이한 사실은 고흐가 태어나기 1년 전에 태어난 형이 있었는데 곧 바로 죽어버렸다. 부모님은 고흐가 태어난 후 죽은  형의 이름을 고흐에게 그대로 물려주었다. 장남을 잃은 어머니는 그 슬픔을 지우지 못하고  차남 (지금의 고흐)이 태어난 후에도 매일같이 죽은 큰 아들의 무덤을 찾았다고 한다.어머니의 애정이 부족함을 느낀 고흐의 맘 한구석에는 항상 슬픔과 울점함이 있었다. 고흐는 자살로 37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는 아주 가난하게 삶을 살았고 정신병에  고흐는 가난하게 일생을 살고 정신병으로 그림작업까지 위협을 받게된다. 친한친구고갱과 갈등으로 화가들의 연합을 꿈꿔왔던 고흐의 소망도 부서져버리게된다.

                                              파블로 피카소

" 나는 찾지 않는다. 발견할 뿐이다."
"나는 어린이처럼 그리는 법을 알기 위해서 평생을 바쳤다."
"예술은 우리의 영혼을 일상의 먼지로부터 씻어준다."
"작품은 그것을 보는 사람에 의해서만 살아있다."
"나에게 미술관을 달라. 나는 그 속을 가득 채울 것이다."
"나는 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을 그린다. "

  

파블로 피카소(Pablo Ruiz Picasso)

 

출생 - 사망 1881년 10월 25일 (스페인) - 1973년 4월 8일
학력 - 마드리드국립미술학교 데뷔

20세기를 대표한 입체파 화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 의 삶 
 
1881 스페인 밀라가(Malaga)에서 장남으로 출생.
1900 바르셀로나 선술집 ‘네 마리 고양이’에서 데생 150점 전시.
1901 <청색 시대> 개막. 파리에서 첫 개인전.
1904 파리로 영구 이주. 페르낭도 올리비에 만나 청색 시대의 우울함 벗고 <장밋빛 시대>로.
1907 ‘아비뇽의 처녀들’로 <입체주의 시대> 시작.
1908 칸바일러 화랑에서 첫 큐비즘 회화전 개최.
1911 첫 뉴욕 전시회.
1918~24 올가 코크로바와 결혼(1918), <고전주의 시대>
1926~36 <초현실주의 시대>
1927 17세 모델 마리 테레즈 만남.
1936 프라도 미술관장으로 임명. 도라 마르 만남.
1937 대표작 게르니카(1937) 발표, <게르니카 시대>
1939 모친사망. 뉴욕현대미술관에서 ‘피카소 40주년 개최.
1943 21살 프랑수아즈 질로 만남. 화실 나치에 의해 수색 당함.
1944 5월 프랑스 공산당 입당.
1946 뉴욕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 개최. <2차대전 전후 시대>
1951 도쿄에서 회고전. 한국전쟁을 테마로 ‘한국에서의 학살’ 작업.
1953 자클린 로크 만남. 1961 자클린 로크와 결혼. <말년 시대>
1963 바르셀로나에 피카소 미술관 개관.
1964 전 애인 프랑수아즈 질로 '피카소와의 삶(Life with Picasso)' 출간.
1966 소묘와 에칭에 몰두. 1967 레종 도뇌르 상 거부.
1970 1월 바르셀로나 피카소미술관에 다수의 청년기 작품 기증.
1973 4월8일 프랑스 무쟁에서 타계.


젊었을 때부터 부와 명예를 가지고 있어서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  피카소는 90이
넘을때까지 살았는데 여자친구가 밝혀진 이름만 26개가 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사람이었다.

피카소는 21세기형 인간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뭐든지 하다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분명 세기의 심장을 꿰뚫은 천재였고 통찰력 넘치는 광인이었고 현대판 돈환이었고 20세기 최고의 예술가였다.

 

20세기에 피카소처럼 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 같다. 그러나 21세기에는 모두가 피카소처럼 문화를 지향하는 인간으로 살고 싶어 할 것이다. 문화란 선악, 시비, 유무를 떠나서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삶의 최고 단계이다. 때론 철학적 진리나 과학적 사실까지도 다 포함하기에 그 범위는 광대(廣大)하다.

 

피카소는 처음부터 부자가 되려고 한 것이 아니지만 그의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생각과 행동, 자신이 정말 잘할 수 있는 것, 좋아하는 것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돈도 따라 붙은 것이다. 이번 전시회 전체 작품 가격만 6천억이고 140여점 평균가격이 43억 원이고 그 보험료만 5억5천만 원이라니 그는 얼마나 부자인가!

■ 여러분은 어떤 말을 주로 하고 사십니까? 

 

 마음 -> 생각 -> 습관 -> 행동 -> 인생

 

 피카소와 고흐의 삶의 차이를 가져온 이유가 무엇인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타고난 마음 + 각자의 환경에 의해 마음이 형성되게 됩니다. 그 마음이 행동을 결정하게 되구요. 

 

아래글을 읽어볼까요?

약속시간을 어긴 사람에게 화가 날 때

 

어떤 사람이 약속 시간에 늦게 도착했다. 이럴 때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그 사람이 자신을 아끼고 있다는 믿음이라면, 마음에 상처를 입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을 유용하게 보내려는 사람은 짜증과 화가 났을 것이다. 반면 내가 30분 정도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면, 나는 그 사람이 늦게 와주어 오히려 고마웠을 것이다. 같은 자극에 대해 다 다른 반응이다. 이처럼 우리 느낌의 원인은 다른 사람의 행동이 아니라, 그때의 자기 욕구다. 자신의 욕구와  

 

 마음은 손바닥 뒤집기 처럼 쉽게 변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글 을 읽어서 내 행동을 바꿀수 있을까요? 좋은글 처럼 잠깐의 행동의 변화는 있을지라도 행동할 때 삶에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분노란 우리가 자신의 욕구에서 단절된 생각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경보기 역할을 한다. 식만 늘어날 뿐 정작 내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내 바구니에 돌멩이가 꽉차있는데 어떤이가 와서 사과를 달라고 합니다. 돌멩이 뿐인 내 바구니에서 사과를 줄 순 없으니 문제지요. 일단 내바구니를비워내고 나서 생각할 문제입니다.

 

그 많은 마음 품고 어떻게 살았지?


 글 나숭인 25세. 고려대. 서울시 송파구 오륜동 
 
고등학교 때였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서로를 경쟁상대로 여기며 죽도록 공부해야 하는 날들. 그 이유를 알고 싶었지만 아무도 그런 것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나는 그냥 문제아일 뿐이었다. 당연히 학교로부터 멀어졌고 학교에 나가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 날은 학교에 갔는데 교실이 평소보다 시끌벅적했다. 


무슨 일인가 하고 들어가보니 외국에서 교환학생이 와 있었다. 그냥 내 자리로 가려는데 내 짝이 큰 소리로 “숭인이는 학교에 잘 안 나오니까 숭인이 자리에 앉으면 돼”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교실에서 나와 버렸다.

 

이 일은 내게 깊은 상처가 되었고 이후 나는 매일 학교에 간다고 나와서는 혼자 영화를 보러 가거나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에 쫓아다녔다.

재수를 하고 대학교에 가긴 했지만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없었다. 매일 매일이 우울했고 학교도 안 나가고 계속 집 안, 내 방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다. 친하게 만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정말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기에 온갖 종류의 책들을 읽었지만 아는 것만 많아질 뿐 정작 나는 변하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지쳐갈 무렵에 우연히 마음수련 책자를 접하게 되었다. 바로 그해 겨울 방학에 ‘대학인을 위한 마음수련 프로그램’에 참가했고 나는 처음으로 내가 살아온 삶을 깊이깊이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정말 나의 살아온 삶이 사진 혹은 영화 필름처럼 내 마음속에 고스란히 저장이 되어 있었다. 돌아보니 나는 매사에 부정적이고 비판적이었다. 그리고 그게 똑똑한 것인 줄 알았다. 주위 사람들에 대한 나의 평가나 세상사를 보는 나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했다.

항상 나만 힘들었고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처음 수련을 할 때는 나에게 함부로 대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원망하는 마음이 많이 들었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고등학교 시절에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며 부모님을 원망했던 기억도 많이 떠올랐다.하지만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볼수록 주위 사람들과 세상에 대한 나의 마음 씀씀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가족들까지도.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난 사람이어야만 했다. 잘난 것도 없으면서 나보다 못한 사람은 무시하고 나보다 잘난 사람에게는 열등감을 느꼈다. 들여다볼수록 나의 마음이 너무나 추해서 계속 눈물만 나왔다.

내가 왜 힘들 수밖에 없었는지 바로 답이 나왔다. 내가 이렇게 좁은 마음과 틀을 가지고 있으니 세상이 이런 나와 맞을 수가 없기에 무엇을 해도 힘이 들었던 것이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이유도 마음의 벽 때문이었다.

나만 옳다는 생각은 친구들을 이해할 수 없게 만들었다. 수련을 하다 보니 정말 나라도 나 같은 아이와는 절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부정적이고, 비판적이고, 항상 안 좋은 점을 찾아내고, 우울하기까지 한 사람과 대체 누가 어울리고 싶어 할까.

 

내가 얼마나 위선적이며 이중적인지도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