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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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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의 기도

 

 

 

집시의 기도


- 충정로 사랑방에서 한동안 기거했던 어느 노숙인의 시


둥지를 잃은 집시에게는

 

찾아오는 밤이 두렵다.

 

타인이 보는 석양의 아름다움도

 

집시에게는 두려움의 그림자일 뿐……


 

한때는 천방지축으로 일에 미쳐

 

하루해가 아쉬웠는데

 

모든 것 잃어버리고

 

사랑이란 이름의 띠로 매였던

 

피붙이들은 이산의 파편이 되어

 

가슴 저미는 회한을 안긴다.


 

굶어죽어도 얻어먹는 한술 밥은

 

결코 사양하겠노라 이를 깨물던

 

그 오기도 일곱 끼니의 굶주림 앞에

 

무너지고


 

무료급식소 대열에 서서……

 

행여 아는 이 조우할까 조바심하며

 

날짜 지난 신문지로 얼굴 숨기며

 

아려오는 가슴을 안고 숟가락 들고

 

목이 메는 아픔으로 한 끼니를 만난다.


 

그 많던 술친구도

 

그렇게도 갈 곳이 많았던 만남들도

 

인생을 강등당한 나에게

 

이제는 아무도 없다.


 

밤이 두려운 것은 어린아이만이 아니다.

 

50평생의 끝자리에서

 

잠자리를 걱정하며

 

석촌공원 긴 의자에 맥없이 앉으니

 

만감의 상념이 눈앞에서 춤을 춘다.

 

뒤엉킨 실타래처럼

 

난마의 세월들……


 

깡소주를 벗 삼아 물마시듯 벌컥대고

 

수치심 잃어버린 육신을

 

아무데나 눕힌다.

 

빨랫줄 서너 발 철물점에 사서

 

청계산 소나무에 걸고

 

비겁의 생을 마감하자니

 

눈물을 찍어내는 지어미와

 

두 아이가 "안 돼, 아빠! 안 돼"한다.

 

 

그래, 이제

 

다시 시작해야지

 

교만도 없고, 자랑도 없고

 

그저 주어진 생을 걸어가야지.

 

내달리다 넘어지지 말고

 

편하다고 주저앉지 말고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그날의 아름다움을 위해


 

걸어가야지……

 

걸어가야지……

 

 

  

서울 영등포 노숙인 쉼터 '행복한 우리집'의 식당 벽에 붙어 있는

 

시(詩)가 있다. 제목은 '집시의 기도', 부제(副題)는 '충정로 사랑

 

방에서 기거했던 어느 노숙인의 시'다. 쉼터 관계자는 "이 바닥에

 

서 아주 유명한 시"라고 했다.


 

'집시의 기도'는 화자(話者)가 노숙하는 신세를 한탄하다 '다시 일

 

어서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이다. 노숙인 김모(68)씨는 "밥 먹을 때

 

마다 (시를) 쳐다보는데 '이 악물고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생각

 

을 하게 된다"고 했다.

 

 

이 시는 10년 전부터 노숙인 관련 단체행사나 자료집에 자주 등장

 

했다. 이걸 쓴 사람은 누구고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 시인이 머물

 

렀다는 '구세군 충정로 사랑방'은 2년 전 중랑구 망우동으로 이사

 

갔다.


 

구세군은 대방동·충정로·서대문을 거쳐 현재 망우동·서대문에 노

 

숙인 쉼터 두 곳을 운영 중이다. 김도진(47) 사무국장은 "'집시의

 

기도'는 1998년부터 2001년 4월까지 우리 시설을 오간 장금(1949

 

년생)씨가 쓴 것"이라고 했다.


 

장씨는 1999년 봄 이 시를 썼다. "98년 장씨가 사업이 망했다며

 

찾아왔어요. 160㎝ 정도의 키에 머리숱도 적고 이(齒)도 많이 빠

 

진 왜소한 사람이었어요. 그런 그가 '집시의 기도'를 써냈어요. 모

 

두들 글 솜씨에 놀랐습니다."


 

당시 '대방동 사랑방'에는 노숙인이 100명쯤 있었다. 그 중 30여

 

명이 글을 끄적였다고 한다. 김 국장은 "장씨가 평소에도 한문이

 

나 사자성어를 종이에다 쓰곤 했다. 이날도 장씨는 집시의 기도를

 

단숨에 써내려갔다"고 했다.


 

사랑방은 10여 년 전 상담기록을 폐기해 장씨에 대한 자세한 정보

 

가 남아있지 않았다. 장씨는 1999년 10월 대방동 쉼터가 충정로

 

로 이사 갈 때 떠났고 2년 뒤 다시 충정로로 찾아와 한 달간 지내

 

다 또 나갔다고 한다.